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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어수선

요가와 아침

 

 

  나는 요가 초보.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무한히 반복되는 동작 속에서 내가 하는 생각은 '언제 끝나지' 뿐이다. 모니터 안의 선생님을 보며 순서가 있는 반복 동작을 따라간다. 다른 때는 잘만 가던 시계가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나를 놀리는 것만 같다. 엉덩이를 높이 올려 두 팔과 다리로 지탱하는 다운독(down dog)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가 앞으로 뻗어 두 손 사이로- 상체를 일으켜 한쪽 무릎을 굽히고 양팔을 쭉 뻗어 버티고 - 굽히지 않은 무릎 쪽으로 손을 내려 상체를 기울이기 - 굽힌 무릎을 일으켜 그쪽으로도 팔을 뻗어 내리기 - 팔의 힘을 써서 몸을 매트 위에 누이고- 발끝만 매트에 닿도록 상체를 일으켜 세운 다음 - 다시 엉덩이를 들고 하체로 무게를 옮겨 다운독 - 이번에는 아까와는 다른 쪽 다리를… 선생님 몸의 흐름은 마치 물처럼 매끄럽다. 나는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떨리는 다리를 부들부들, '끙-차'하는 소리를 여기 쓰인 그대로 내가며 목각인형처럼 덜거덕댄다. 잠시만 영상을 멈추고 언제 끝날지를 미리 보는 건 반칙 같아 참기로 한다. 그러다 문득, 45분 동안이나 이어지는 이 수련 속의 반복이 내 삶과 닮아있다고 느낀다. '굴레 같아, 굴레. 그래, 끝나지 않는 삶의 굴레. 아마 이건 삶의 굴레를 견뎌내는 힘을 기르는 수련인가보다' 생각한다. 갑자기 그게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해서, 한 번, 두 번, 똑같은 자세 속에서 다른 느낌을 찾아보려 애써본다. 좀 전과 같은 동작과 몸짓이어도 나는 분명히 조금 전의 나와 다르니까. 그 '다른 나'를 찾아본다. 쉽지 않다.

 

  그러는 동안 수련은 계속된다. 다리를 어깨너비보다 넓게 벌리고 발끝은 정면으로 향한다.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쭉 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천천히 앞으로 상체를 숙인다. 이제는 수월하게 손끝이 바닥에 닿고, 손가락들이 바닥과 만나고, 손바닥도 바닥을 꾹 누르며 바닥과 반가이 인사한다. 요가를 처음 시작한 5개월 전에는 손톱 끝조차 바닥과는 만나지 못했다. 한참 몸이 아파 그저 빨리 죽는 게 소원이었던 내게 누가 말했듯이 '정말로 몸은 변하는구나, 살아있구나.' 나는 상체를 바닥으로 떨군 채, 꼿꼿이 세우려 애쓰고 다니던 목의 긴장을 풀어버린다. 머리가 생각보다 무겁다. 그것은 들고 있을 때보다, 이렇게 놓아버렸을 때 나의 중심을 더 잘 잡아주는 듯하다. 이제야 편안해진다. 천천히 눈을 감는다. 후우- 숨을 내뱉어본다. 그때 반쯤 열어둔 창밖에서 풍경 소리가 들린다. 골목 끝, 주차장 앞에 꽃 피는 화분을 열 개도 넘게 가지고 있는 그 빌라다. 건물 모서리에 달린 물고기 모양 풍경. 짜그랑-짜그랑- 청아하게 울리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 맑다. 아마 날씨 때문일 것이다. 어젯밤에는 비가 내렸다. 여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밖은 흐리고 비가 올 것처럼 바람이 분다. 풍경소리는 공기 중에 퍼져있는 보이지도 않는 물방울들을 타고, 더 또렷하고, 더 맑고, 더 부드러운 울림을 가진 소리를 낸다. 이 흐린 날 풍경 소리만이 맑다. 나는 고개를 거꾸로 떨궈놓은 채 위아래가 뒤바뀐 귀로 조용히 그 소리를 듣는다.

 

  늦은 아침,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코로나로 들썩이고 움츠러들고 답답해 견디기 힘든 이 시기에, 사람들은 다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 이 동네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고요함에 잠겨있다. 아, 수련이 막바지에 다다른다. 아기 자세. 매트에 옆으로 누워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영상 속 선생님은 "엄마 뱃 속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낍니다."라고 말했고, 나는 어제 만났던 동료의 8개월 된 아기가 든 배를 살짝 만져봤던 감촉을 떠올린다. 8개월째인데 9개월 된 아이처럼 크다고 했다. 아마 곧 있으면 '윤지'가 될 그 아이는 자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동료는 첫 아이를 가졌을 땐 아무것도 몰랐는데, 인제 보니 아이가 이렇게 뱃속에 들어있을 때 '둘이 같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안전하고 평온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사람의 몸속에, 작은 사람이 들어 있었다. 내 인생에도 온전히 엄마의 속에 있었던, 세상 걱정 없이 편안하던 그런 10개월이 있었다.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그 시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윤지처럼 몸을 웅크리고 누워 숨을 쉬어본다. 조금 차갑지만 비 냄새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내 몸을 쓰다듬고 지나갔다. 코가 시원해졌다.

 

  사바아사나-이제 다 왔다. 요가 매트에 등을 대고 눕는다. 발목과 손목, 온몸의 힘을 풀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내쉬는 숨에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내보낸다. 그렇게 숨을 쉰다. 편안한 숨을 쉰다. 바깥에선 근처 까치산에 살 것이 분명한 새들의 소리만 들린다. 누구인지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까치산에 갈 때마다 익숙하게 들어왔던 소리다. '지저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해 준 그 소리. 그러다 갑자기 창문 밖 에어컨 실외기에 가끔 쉬었다 가는 비둘기가 앉았는지 고르릉고르릉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나는 눈을 감고 누운 채 기뻐졌다. 이 소리들이 내가 틀어놓은 요가 영상에서 나는 인위적인 소리가 아니라는 것에. 그리고 내가 눈을 감고 누워서도, 어느 날 내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회색의 날이 온다고 할지라도, 혼자서 여러 가지 새 소리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에. 기뻐졌다.

 

  5분쯤 지나 눈을 떴다. 나는 나의 하루, 나의 굴레, 나의 수련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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