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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어수선

보통의 사람

 

  생각들이 사라졌다. 문장들도 같이 사라졌다. 지금 나는 아주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샤프를 들고 끝을 두 번 눌러 심을 꺼냈고, 조금 전에 소리내 읽은 책의 저자, 메리 올리버의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세상에 시작하고 전진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연필은 없어." 샤프도 연필이라면 연필이니까. 그러나 나는 아직 내가 써야 할 것을 알지 못한다.

 

  정신과에 다니며 약을 먹기 시작한 뒤로 나는 통 글을 쓰지 않았다. 처음에 내 몸에 맞도록 약을 적게, 또 많이 조절하던 중에는 그 약에 적응하거나 저항하여 이전에 없던 새로운 하루를 보내는 데만 온 하루를 썼다. 약은 나른함과 하품, 구역질과 변비를 가져왔고 나름대로 가마니라이프를 지향하며 나만의 루틴을 (그래봤자 대부분은 비어있는 시간이었던) 살던 하루들이 대대적인 재조정의 시간을 겪었다. 나는 쏟아지는 잠을 굳이 이기려 애쓰지 않았고, 일부러 져버렸고, 만족했다. 밤이 되면 남들이 하듯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쉬이 잠에 빠져들었다. 누우면 잠이 온다니! 행복하기까지 했다. "공황장애 치료약께서 발작을 일으키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 도다"*

 

  이건 정말 축복이었고, 현대의학은 정말로 어느 정도는 신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잠이 오지 않던 날들의 내 길고 긴 밤에 무수히 찾아오던 손님들은 문전박대당했다.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과 말들과 후회와 두근거림과 두려움, 그리고 '결코 일어나 종이에 적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문장들. 그들은 노크조차 하지 못하고 쫓겨났다. 물론 가끔 화가 나는지 씩씩거리며 악몽이 되어 나를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것도 지지난 주의 일이다. 지난주부터 조금 더 늘어난 약은 악몽까지 막아주었다. 그 이후로는 딱 두 번, 한 번은 슬펐고 한번은 진절머리 났던 꿈이 다였다. 담당 의사는 그런 꿈을 너무 심각하고 깊게 생각하지 말자고 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으니, 그러기로 했다.

 

  밤에 꿈을 꾸게 하는 기능과 글 쓰고 싶은 마음은 뇌의 같은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걸까? 꿈들이 희미해짐과 동시에 글 쓰고 싶은 마음도 사그라들었다. 나는 어느 날 문득 이것을 깨닫고는 그게 언제부터였는지 되짚어보았다. 아마도 4주 차가 됐을 때쯤이다. 약과 그에 대한 반응은 내 일상이 되었는데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것은. 그 마음은 마치 마른 잎이 바닥을 향하듯 떨어진 뒤, 흠뻑 비를 맞았다. 정신과 약 몇 알이 한 짓. 나는 고개를 숙여 젖은 낙엽이 되어버린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아주 잠깐 두려워졌다.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 하고. '이게 내가 맞는가?' 하고. 그러나, 정말로 아주 잠깐이었다.

 

  별다른 특징 없는 나라는 인간의 삶에 글쓰기는 내가 살아가고 존재하는 방식 중 가장 큰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어디에도 내놓지 않은 말을 종이 위에 써내는 것으로 '나'라는 것이 드러났고 나는 그걸로 숨 막히지 않을 수 있었다. 숨 쉴 방법이었다. 아마도 나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의 어떤 부분을 특별하다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랬다. 그러나 사실 요 몇 년간 내 정신은 그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없을 만큼 때가 끼어 있었고, 1월의 언젠가부터는 '어떻게 하면 글을 쓰지 않고도 나일 수 있을까'를 묻고 있었다. 나는 그냥 내가 나일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30년을 살고도 내가 나를 아는 유일한 방법이 글쓰기라서 쓰고 있었을 뿐이다. 30년이 지났는데도 내가 너무 희미하고, 어딘지 흐릿하고 가진 것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자꾸만 나를 말해내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마른 잎이 떨어지고 비가 내린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약이 그것을 도왔다.

 

  식은땀, 현실감 없음, 과호흡, 멀미, 어지러움

나는 이런 것 없이 숨 쉬는 보통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한밤중의 불면, 시간을 확인하려 켜는 핸드폰 불빛, 시간을 확인하면 초조해서 빨라지는 심장 박동

나는 이런 것 없이 잠드는 보통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겪은 세상의 불합리함과 내가 본 세상의 비극을 모든 이가 볼 수는 없고, 심지어 그러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아니, 그렇다. 모두는 각자의 삶을 산다. 나는 눈을 천천히 꿈뻑이며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됐고, 이로써 보통의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아주 자주 이기적인 보통의 사람이다. 도무지 귀가 없는 것 같은 세상 때문에 아팠던 몸도 어쩌면 온전히 세상 탓은 아니었는지도.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서서히 낫는 몸을 보며 나는 조금은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엔 별생각이 없다. 그러니까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없다. 가끔은 멍하고, 문장들도 사라졌다. 겨울이 올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든다. 매년 더 뜨거워지는 이 지구의 여름 속에서, 나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고요하게 숨 쉴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말보다 느린 어떤 것-푹푹 찌는 한여름의 하얗고 차가운 눈 속에서 나는 말보다 느린 어떤 것을 찾고 싶다. 바라는 건 그뿐이다.

 

 

 

 

 

*성경 시편의 127편 2절의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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