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제발 나한테 보여주지 마세요." 내가 자주 사람들에게 하는 말, 신에게 하는 호소. 나는 누군가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어 고통받는 병에 걸렸고 그것이 어떻게 낫는 병인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더 이상 무엇도 보거나 느낄 힘이 없어 눈을 가리고 귀를 닫고 산다. 뉴스를 보지 않는다. 누군가 전해주는 이야기도 듣지 않으려 애쓴다. 무언가를 마음 아파하며 나에게도 전할라치면 "나한테 말하지 마, 나한테 말하지 마…." 손사래를 친다. 제발 부탁이야. 누군가 슬퍼하고 있다는 걸 나한테 말하지 마. 나는… 나는 아무런 힘이 없어.
고통과 가까운 곳이었던 내 일터에선 수시로 감정의 버튼을 꺼 놓아야만 일할 수 있는 날이 많았다. 그 버튼은 금방 고장이 났다. 나는 '나약하게도' 너무 자주 마음이 아팠다. 가끔은 내가 가진 자기연민이 폭발하듯 나를 덮치기도 했다. 물론 버튼이 고장 난 건 오직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꽤 오랜 시간을 전남편의 폭력이 왜 폭력인지를 설명해내야 하는 입장에 있었는데, 그건 아주 똥을 씹어먹는 일과 같았다. 왜냐니. 나는 전남편이 아니라 이세상에 지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설명해냈다. 벗어났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세상이 나에게 똥을 먹일 수 있는 것인지, 크게 마음이 상해버렸다. 나 자신을 질질 끌고 어딘가로 갈 수 없을 만큼.
나는 내가 보고 겪은 일들을 토대로 또 다른 누군가의 아픔까지 안아내는 슈퍼맨이 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아팠던 만큼 아팠을 누군가를 보는 것이 두려워서, 혹시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있는 것을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서 눈을 감아버린 겁쟁이다. 그런 내가 코타키나발루, 여기까지 도망쳐 와서는 눔박 Numbak 학교가 있는 동네를 보러 갔다니. 이건 절대로 내 계획일 수가 없었다. 의도치 않은 일이었고, 미리 알았다면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을 우연이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미등록 이주민들을 이주 시켜 허가한 듯 허가하지 않은 듯 살게 하는, 이름도 없는 길 Unnamed road 에 위치한 동네를 내가 왜 가겠는가. 나는 겁쟁인데.
마을은 한 바퀴 둘러보기가 쉽지 않았다. 얼마 전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길을 보수해줬다고 하는데, 마을 입구 쪽의 길만 말짱했다. 길은 물 위에 있었다. 그러니까 마을이, 바다 위에 있었다. 판자로 이어진 좁은 길을 따라 걷는데 멀미가 났다. 앞장서서 인도하는 사람과 나에게 그 사람을 소개한 동행이 원망스러웠다. 미리 말 좀 해주지. 그럼 나는 안 왔을 거야. 마음도 함께 울렁였다. 마을 아래의 바닷물은 이곳 사람들의 변기이자 쓰레기통이고, 떠서 마시고 씻을 물이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 이게 삶일 수 있는가를 물었다. 분명히 처음에는 '임시'의 공간이었을 이곳이 여전히 임시적인 모습을 한 채 몇십 년을 버티고 있었다. 조악한 판잣집의 벽 사이로 작은 아이들이 더 작은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이곳에서도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랄 것이고, 그 아이들이 또 아이들을 낳을 것이었다. 나는 행여 발을 헛디딜까 봐 곳곳이 망가진 길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차라리 그 길만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지나가는 아이들은 익숙한 듯 잘도 뛰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해서 한국의 우리 엄마, 아빠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이 마을에서 봤던, 학교도 갈 수 없는 아이들이 무엇을 꿈꿀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꿈꿀 수 있는 것과 이들이 꿈꿀 수 있는 것 사이에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인지, 왜 어떤 아이들은 바다 위에서 태어나는지, 평생을 살아도 땅에 발을 딛는 게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이 모든 이상한 일들에 내 잘못은 없지만, 내 잘못도 있기에 나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묻고 말았다. 이들의 삶은 내 책임이 아니지만 내 책임이기도 했다. 내 삶이 내 책임이지만 내 책임이 아니기도 한 것처럼. 나는 내가 그 둘 사이의 어떤 지점에 멈추어 살아야 하는 건지, 어디까지가 내 선인 건지, 공감과 내 고질적 오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말레이시아로 오던 날, 나는 점점 더 추워지는 한국을 피해 도망치는 내가 부끄러웠다. 도망친 것도 아니었으면서 도망치는 것 같았다. 그날 지하철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세고 또 세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겉옷이 너무 얇은 소재의 옷이라 혹시라도 저 옷이 그가 가진 겨울옷의 전부가 아닐까 마음을 졸였기 때문이었고, 계속해서 몇 번이고 세는 그의 천 원짜리들이 아무래도 그가 가진 전부인 것 같아 보였고… 그날 하필, 길에서 죽은 우리 아빠가 꿈에 나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연스레 미래를 꿈꾸는 것조차 사치인 사람들을 떠올렸었다. 미래 같은 건 오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 삶들, 기다려도 결코 오지 않는 미래를 포기한 사람들. 그냥 그런 것들을 끌어안고 주저앉아 울고 싶은 마음이 되어 비행기를 탔다. 구제 불능이었다. 끝없이 내 능력 밖의 것을 바라는 것이.
그러나 결국 오늘에야 생각한다. 이 아슬아슬한 줄에서 어쨌든 내려서서 어딘가에 발을 디뎌야만 하겠지, 하고. 그러니까 나는 내가 이 줄에서 내려서서 땅에 발을 딛고, 다시 어딘가를 향해 걸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아직도 겁쟁이면서. 구제 불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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