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버튼을 찾았다. 골든레코드. 그게 내 눈물 버튼이다. 보이저호에 달아서 우주로 보냈다는 이 레코드는 진작에 나만의 '믿을 수 없는 일'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지만, 눈물 버튼은 그 레코드를 재생해야 눌리는 것이었다.
혼자서 빨래를 너는 중이었다. 유튜브를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소리만 들었다. 수건을, 팬티를, 티셔츠를 널다가 다시 수건을 널 때쯤이었다. 파도 소리. 눈물 버튼은 인간들이 지구를 소개하며 담아 둔 파도 소리가 나올 때 눌렸다. 나는 내가 건조대라도 된 듯이 수건을 허공에 든 채 흐아아, 얼굴을 구겼다. 갑자기 울컥하는 눈물에 당황한 내 귀로 새 소리와 바람 소리, 천둥이 내는 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베란다 밖으로는 부드러운 부슬비가 소리도 없이 허공을 채우고 있었다. 그 순간 빨랫감들과 나와 내리는 부슬비는 영원의 순간에 서 있었다. 순식간에 내 주위의 시간과 공간이 사방으로 트였으니, 그 먹먹한 광활함에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 10년 전이다. 뼛속까지 문과인 내게는 안드로메다은하 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NASA에서 보이저호의 바깥 면에 금속 레코드판을 달아 우주로 보냈다. 목성을 지나 태양계 바깥으로 나갈 두 대의 우주선. 우주선 안쪽에는 레코드를 재생할 수 있는 핀이 들어 있는데, 누군가가 레코드 덮개의 안내문을 따라 재생하면 지구의 소리, 인간의 음악, 인간들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음성이 언어별로 나온다. 이어서 지구와 인간의 모습을 담은 118장의 사진도 소리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가(!) 모습을 드러내고, 레코드판 표면에는 펄서부호를 이용해서 그린 지구의 위치, 그러니까 지구의 주소도 적혀있어서 정말로 누군가 이 레코드판을 받는다면 이게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일! 벌써 50년 가까이 우주를 항해하며 우리 은하계를 벗어나 성간우주를 날고 있다는 보이저호. 이들과는 17시간~20시간의 격차를 두고 소통한다는데, 빛의 속도로 오는 신호가 스무 시간을 달려야 하는 거리라니. 나는 왠지 그 스무 시간의 거리만큼 외로워지고, 어쩐지 간절해지는 마음을 끌어안고 어쩔 줄을 몰랐다. 너무… 너무 아름답다, 너무 멋있다, 너무 낭만적이다, 너무…. 나는 내 눈물의 이유를 찾으려고, 숨이 멎도록 뭉클해진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려 애썼지만 그럴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 언어로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우리'는 어쩜 그런 메세지를 보낸 걸까? 우리가 여기 있어요. 우리는 이런 곳에 살아요. 우리는... 아니, 당신들은 어떤가요?
지금으로부터 수십억 년이 흐르면, 지구는 적색거성으로 팽창한 태양 때문에 이미 숯덩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보이저 레코드판들은 그때도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한 때- 머나먼 행성 지구에서 번성했던 오래된 문명의 소곤거림을 간직하고서 우리 은하의 어느 머나먼 지역을 부유하고 있을 것이다.
_ 칼 세이건 <지구의 속삭임> 64쪽
레코드는 10억 년 동안은 건재할 거라고 한다. 내가 지금 이런 글을 끄적이고 있는 동안에도 보이저호는 점점 더, 점점 더 먼 곳을 향하고 있다. 멀어지고 있다. 서로 답장도 할 수 없는 먼 거리에 닿아도 계속해서 미련도 없이 멀어질 것이다.
나는 눈물을 훔치면서 빨래를 다 널고, 홀린 듯 노트북 앞에 앉아 나를 울린 그 영상을 다시 틀었다.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이유도 모른 채 입을 벌리고 엉엉 울며 휴지를 눈에 갖다 대고 꾹꾹 눌렀다. 영상이 다 끝나고도 멈추지 않는 울음에 한참을 끅끅대다가, 조금 진정이 되고 나서야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눌렀다. "좋아요." 이런 영상은 '좋아요'를 받아야 해…! 그리고는 내가 누른 게 '좋아요'가 아니라 눈물 버튼이었다는 듯이 다시 흐아아- 입을 벌려 울었다. 누군가 그런 나를 봤다면 무척 의아했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 보낼 메시지가 있는 사람처럼, 아니면 받을 메시지가 있는 사람처럼 울었다. 나는 십억 년을 건너, 이제는 답장도 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온 메시지를 받은 외계인처럼 울었다.
후대에 무언가를 남기고자 하는 것이 웬 인간의 욕심인가 했던 평소의 생각이 보이저호 앞에서는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지구는 너무 외롭고 아름다운 곳이어서, 그 외롭고 아름다운 곳에서 언제까지고 누군가를 향해 날아갈 편지를 보내는 것까지도 눈물 나게 아름다운 일이었던 것이다. 골든레코드의 메시지는 의도치 않게 40년 뒤의 내가 먼저 받았다. 발신지와 수신지가 같은 바람에 나는 쉽게 모든 내용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 40년을 돌아 오늘 내게 발견된 이 메시지가 나를 보이저호만큼 멀리 데려가 지구를 보게 하고, 나를 보게 한다.
아름답지 않을 수 없는 거구나,
우리는 그런 존재구나,
나는… 그런 곳에 살고 있는 거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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