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 네 아들… 너무… 못생겼더라. 세 살이라는데… 애가 딱 봐도 너더라. DNA라는 게 참 무섭지. 너무 못 생겨서 웃어주지도 못했어. 네 새 아내라는 사람은 나를 아주 탐탁치 않아 하는데, 뭐 당연히 그렇겠지. 자기 남편하고 이혼한 전 부인이 뭐 그렇게 반갑겠어? 그런데 나는 마음에 들더라 그 여자. 눈이 아주 크고 미간이 넓은 게 물고기같이 생긴 데다, 키도 187cm인 너보다 한 뼘은 더 큰 게, 조만간 너를 잡아먹겠더라. 피식 웃음이 날 만큼 다행이더라. 너는 좀, 잡아 먹혀야 돼.
나는 네가 그 좁디좁은 마음을 가지고선 평생 내게 한 짓을 자책하면서 살 줄 알았는데… 그래야 너답지 않나? 넌 네가 착하다고 믿잖아. 착하다고 믿어. 너희 어머니도 그랬잖아. 네 평생 "너는 속이 깊-고 깊은 아이다"라고 골백번을 말해줬잖아. 끔찍하기도 하지. 사실 이랬다저랬다 하는 너희 어머니 불같은 성정에 그게 딱히 '착하다'는 말은 아닌데, 어린 너는 그걸 그렇게 알아들어서 너는 점점 더… 아무튼, 나는 네가 착한 놈, 바른 놈 코스프레를 하고 싶으면 영영 혼자 사는 게 맞다 싶었는데, 아니 그게 맞는데. 근데 재혼을 했어?
이-상하게 속이 좀 상하더라. 왜였을까? 외로워서? 내가 아직 혼자인 게 괜히 서러워져서? 아니. 분명히 말하건대 그건 아니었어. 화. 화야. 나는 화가 났어. 그래서 네 물고기 아내가 보는 앞에서 네 두 뺨을 양손으로 갈겼지. 분하더라, 네가 웃는 게. 네가 날 보고 웃다니? 그것도 네 식솔을 끌고 와서. 그러고 보니 내가 본 어느 소설에서 그랬어. 그 소설에서 살인마가 이런 얘길 해. "죄책감은 본질적으로 약한 감정이다. 공포나 분노, 질투 같은 게 강한 감정이다. 공포와 분노 속에서는 잠이 안 온다. 죄책감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인물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나는 웃는다. 인생도 모르는 작자들이 어디서 약을 팔고 있나."*
맞아. 너는 두 발 뻗고 잘 잘 거야. 그리고 나는 아직도, 네가 나오는 꿈을 꾸는 거야. 네가 죄책감이라도 가지고 살고 있기를 바랐다면 너무 순진한 거였던 거야.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어. 나도 종종 너를 완전히 잊고 사는데, 네가 나에게 한 짓을 정말 종종 다 잊고 웃는데, 너는 어떨까. 너는 더하겠구나. 고통을 당한 내가 이럴진대, 고통을 준 네가 멀쩡하지 않을 리가 없다. 억울하지만 정말 그거야말로 맞는 것 같지 않니? 당한 나도 이런데, 네가 웃지 않을 수 없을 리가, 없지. 열 받아. 이제는 너에, 재혼한 여자에, 끔찍하게도 너와 그 물고기 아내를 섞어 놓은 애까지 나와서 나를 놀리잖아. 나는 등에 땀이 흥건하게 나서 깨. 퉁퉁 부은 얼굴로 끙끙대며 일어나. 네가 나오는 꿈 뒤엔 늘 얼굴이 부어있어. 오늘 이 꿈에서도 네 두 뺨을 갈긴 건 난데 마치 내가 맞은 것처럼….
있지, 근데 말야. 오늘 아침엔 다른 날들과는 다른 생각이 들었어. 내가 종종 밤중에 잠에서 깨서, 지금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꿈에 갇혀 울면 우리 엄마가 날 안고 그런 말을 하거든. "해준아, 네가 너무 행복한가 보다. 행복해지려고 하니까 그런 꿈이 와서 너를 괴롭히나 보다." 정신과 의사도 똑같은 말을 했어. 뭐, 정확히 말하면 같은 말은 아니야. 그냥 "꿈은 불안, 무의식 그런 것의 반영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어. 같은 말이네, 그치? 나는 오늘 아침에서야, 오늘에서야, 이들이 내게 해줬던 말들을 이해한 것 같아. 아, 내가 너를 벗어난 게 맞구나. 내가 너를 벗어났구나. 이런 난리도 아닌 꿈이 나를 붙잡아놓고 싶어 할 만큼. 나는 멀-리 왔구나. 좋다.
네 아들이 세 살이랬지?
내가 너를 떠난 지도 3년이 좀 넘었네.
너한테 미안할 것 하나 없이, 네가 오늘 내 꿈에서 보여준 아들은 내 자식이 아냐.
기-쁘다. 그 앤, 네 물고기 아내가 낳은 아이야.
그러니까 언제든 내 꿈에 찾아와.
그때마다 네가 누구와 같이 오든 네 뺨을 갈겨 줄게, 이 개새끼야.
*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문학동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