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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어수선

어디 산에라도 올라가,

 

  "본인이 피곤하다는 말 굉장히 자주 하는 거, 알고 있나요?" 나는 금방 넓고 푹신한 소파 위에 초조한 듯 기대지도 못하고 앉아 "그냥… 다 피곤해요."라고 말한 참이었다. 상담 선생님의 온화한 질문에 되짚어보니 '그랬다' 싶었다. 50분의 상담 동안,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반응은 '피곤해요'로 요약되었기 때문에 아마 나는 다섯 번은 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일이요? 피곤하죠.

-사람들 만나는 거요? 지쳐요, 생각만 해도 피곤해요.

-회의에 가면 투명 인간인척해요. 아무도 말 못 걸게 우적우적 밥을 먹고 눈은 계속 바닥만 쳐다봐요. 그런데도 꼭 누가 와서 인사를 해요. 그래요. '네트워크'니까요. 그럼 전 웃으면서 인사하고 명함도 꺼내요. 얼굴은 웃는데 가슴 속은 썩어서 문드러지는 느낌이 들어요. 진물이 나는 느낌… 아, 피곤해요. 그런 일들….

 

  나는 그때 상담을 받을 것이 아니라 일을 그만두었어야 했다. "피곤해요, 피곤해, 다 피곤해."라고 말하던 그때. 주제 파악 못 하는 남자 하나가 이혼을 놓고 2년을 버티는 바람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그냥 죽어!"라고 속에도 없는 말을 한 뒤 정말로 아빠가 죽었다. 차라리 그때, 일을 그만두고 어디 산에라도 올라가 밤낮이고 울었더라면 지금의 삶이 좀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래, 삶이 그렇게 쉬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삶은 나와 내 가족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했다. 거기에 더해 일을 그만두면 나를 힘들게 한 이 세상에 지는 것 같아 그러기도 싫었다. 거기에 또 더해 엄마와 동생, 우리 셋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자면 남편과 아빠를 잃은 게 나만은 아니라는 게 눈에 훤했다. 그러니 삶은 야속하게도 킵 고잉 keep going, 끝도 없이 굴러갔다. 남은 자들은 남은 생을 살아 내야만 한다. 엄마와 나와 동생-우리 셋 중 누구도, 혼자서 모든 걸 잃은 체하고 산으로 들어갈 순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견디고 있었으니까. 겨우 서로를 의지해 무너질 듯 기대고 있었으니까.

 

  생의 가장 낮은 지점을 지날 때, '지금이 가장 힘든 때'라는 걸 알고 지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냥 시팔 조팔, 갸아-악, 도대체 왜! 하다가, 더 이상 그 말을 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문득 돌아보면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인생 최악의 지점이리라. '아, 저기였구나.' 이제 보자니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도 못 할 만큼 깊은 구덩이. 돌아보니 그것이 다름 아닌 무저갱. 그러니 나도 몰랐다. 나는 매주 남영역으로 상담을 다닐 때, 상담을 갈 때마다 "피곤하다"고 말할 때,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구덩이에서 어찌해야 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그냥 피곤하기만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어찌할 줄을 모르니 멈추지 않았고,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만났고, 글쓰기 수업에도 맹렬히 참여했고, 글벗들을 따라 모꼬지를 가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 모꼬지. 숙소가 산 옆이었다. 나는 2017년 11월의 어느 날, 그 산에서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감각, 그 중요한 것을 주웠다. 아침에 홀로 일찍 눈을 떠 숙소 옆의 산을 올랐을 때였다. 오르고 오르다 아무도 없는 길에 주저앉아 울어 버렸던 그때. "아빠- 아빠-" 하고, 같이 온 아빠를 잃어버린 다섯 살짜리 마냥 그 큰 산이 떠나가게 울었던 때… 우는 내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고 계속해서 떨어졌다. 그거였다.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걸 알려주는 어떤 것. 그게 주저앉아 우는 내 주위로 자꾸만 토독, 토독 떨어졌다. 그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도 못하던 나는 코를 훌쩍거리고 거칠어진 숨을 꺽꺽대며 위를 쳐다보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울면서도 이상하다 싶어, 눈물을 훔치고 주저앉은 그 모양 그대로 엉금엉금 발만 움직여 떨어진 것들을 살폈다. 찾아서 주워보니 솔방울의 껍데기였다. 다시 눈을 들어 나무 위를 보니 청설모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잣을 까먹고 있었다. 나는 한순간 멍청이가 된 얼굴로 청설모를 바라보았다. 울음이 뚝 그쳤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어쩌면 이럴 수 있지' 싶기도 하고, '내가, 내가 이렇게 우는데 너는 잣을 까먹어? 아니 하느님, 내가 이렇게 우는데 청설모를 여기 둬요?'

 

  그러나 곧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인생은 이런 것이다. 엉엉 우는 내 머리 위에서 잣 까는 청설모, 내 머리 위에서 씹히고 있는 잣 같은 것…. 그 순진무구한 청설모의 표정, 바쁜 손가락과 야무진 이빨. 나는 멍-하니 잣 까먹는 청설모를 구경하다, 그가 내 주위로 떨어뜨린 껍데기, 그 소중한 것을 몇 개 주워 산을 내려왔다. 무릎을 양 손으로 짚고 일어나 왔던 길로 걸어 내려왔다. 더 이상 눈물은 나지 않았다. 주우면서 보석이 된 그 껍데기들은 집에 와 작은 병에 넣어 보관했다. 잊고 싶지 않았다. 인생이란, 내가 울고 있을 때 청설모는 잣을 까먹는 것이라는 걸. 그 '동시성'이라는 게 묘하게 시원했다. 맞다. 그건 시원한 감각과 비슷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느낌, 아주 차가운 숲의 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오는 느낌. 그래서 내 안에 터질 듯 가득 찬 내가 허공에 붕 떠버리는 느낌. 그렇게 마신 숨을 내쉬면 날숨과 함께 모든 것이 공기 중으로 가볍게 흩어지는 것이다. 빵-하고 터질 것 같았던 내가 푸슈슈슉-작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허파에 든 바람, 허파에 든 허무, 허파에 든 공허 같은 것을 쭉 빼버려 쪼그라진 채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 감각을 잊고 싶지 않았고, 잊지 않고 있다. 지금도 나는 책상 위에 앉아 글을 쓰는데, 멧비둘기가 밖에서 꾸욱구-꾸욱구- 떨리는 소릴 낸다. 삡삡삡 우는 새가 가까이 지나갔고, 큰 길가엔 사람이 한 명 이상은 탄 차와 오토바이가 지나고 있다. 일부러 귀를 기울인다. 지금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습관처럼 살핀다. 언제나, 모든 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나는 2020년이 된 지금, 50분의 상담조차 피곤해져서 잠깐의 진료로 약을 타 먹을 수 있는 정신과에 다닌다. 내게 공황장애가 있다는 걸 올해야 발견했고, 그때 그만뒀어야 했던 일은 어째 이제야 그만두었다. 그러나 일이나 끝난 거지 삶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쉽지 않다. "도대체 왜!!"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이럴 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지혜는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그리고 언제 끝나는지에 관해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것에 놓여있다"고 한 누군가의 말을 뼛속 깊이 기억하는 것. 아, 그런데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야 깨달았다. 가장 힘들었던 그때, 나는 일은 그만두지 않았어도 '어디 산에라도 올라가서' 울었었구나. 항상 '그때 그랬어야 했었다'고 후회하며 살았는데… 정말 그랬었네. 오, 그리고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나는 3년… 지금까지 살아있다.

 

  삶을 견디기 어려워진다면 또 어디 산에라도 올라야겠다. 그땐 아예 땅을 파고 들어가 누워버리든가 해야지. 그러면 머리 위에서 무언가 떨어지거나 땅속에서 뭔가가 나오겠지. 청설모이든, 까치이든, 까마귀이든, 지렁이든, 개미든 그 무언가가 내 속의 고통과 배어 나오는 진물, 눈물과 함께 나온 콧물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단 듯이 움직이겠지. 그러면, 그러면 나는 또 멍청해져서 눈물이 뚝 그치겠지. 가만히 거기에 머물러 있다가 주섬주섬 무릎을 일으켜 산을 내려오게 되겠지. 그러면 난, 3년쯤 또 기어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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