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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어수선

평범한 가정

사진 출처 Unplash, Abby-lim

 

  "이야아아아-! 내가…! 내가 이 새끼야…!!"

새벽 두 시 반. 소리의 파동으로 보아 앞 빌라 어딘가에서 나는 소리다. 새들도 매미도 잠들어 있는 밤. 한 주 넘게 매정히 쏟아지던 장맛비도 오늘은 오지 않는다. 모두가 멈춘 고요 속에 남자의 소리만 쩌렁쩌렁하다. 무의식에 푹 빠져있다가 의식을 차린 나는, 전형적인 50대 후반-60대 초반 남성의 억울하고 미어지고 답답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 절망하는 절규를 들었다. 힘없는 팔을 턱 뻗어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제자리에 놓은 뒤 천장을 바라보았다. 일어나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볼 힘은 없었다.

 

  남자는 끄윽끄윽대는 소리로 '드디어 오늘 돌아왔다'는 또 다른 남자에게 "내, 니 오늘 올 줄 알았따! 그래서 내가 잠도 안 자꼬…!"하며 울부짖었다. 잠도 안 자고 새벽 세 시가 다 되도록 누군가를 기다렸다는 저 집에선 소주 몇 병이 비워져 나갔을까. 곧이어 "너를 죽이고 만다!"는 소리가, "맘 편하실 때까지 그냥 때리시라"는 소리가, 결국 못 때렸는지 "죽인다, 죽이 삔다"하다, 괜한 세간 살림만 우장창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동이 나는 동안 우리는, 그러니까 이 동네 주민 모두는 잠에서는 깼을지언정 누구 하나 언성 높이는 짓은 하지 못했다. 듣자 하니 그 집엔 여자도 둘이 있었고, 말했듯이 아주 전형적인 상황이었다. 아내인 듯한 여자가 힘없이 "그만해, 여보…!"했고, 분명히 장녀일 여자가 "아빠, 그만 하세요…!"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게 모든 집의 일이라서, 그냥 평범한 일이라서, 어젯밤 우리는 모두 무언가의 공범이 되었다. 행복한 집이 어디 있으랴, 하며. "너네집은 왜 그렇게 생겨먹었느냐"고 소리쳐 막기엔 왠지 부끄러워서. 우리 모두는 그 집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까 두려워 귀 기울이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조차도 3년 전 우리 집의 한밤중 소동에 대해 아무도 아무 말 하지 않았던 게 고마워, 그 집의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을 때서야 휴대폰을 손에 꼭 쥐었다. 그리고 잠자코 기다렸다. 웃기는 말이지만 나는 3년 전 그때 그게 고마웠었다. 이웃들이 내가 지랄하도록 놔둔 것. 그들 중 아무도 "이 미친년아 밤중에 그만 울어!"라든가, "니들 제발 그만 좀 하고 쳐 자!"라고 하지 않았던 것. 그날 우리 아빠는 집을 나갔고 죽었다. 만약에 그날 밤 우리 이웃 중 누군가 우리에게 무어라고 했더라면, 그랬어도 아빠는 죽었을 것이고, 내 마음엔 그날 이웃들에게 들은 말이 더 아프게 박혔을 것이다. '그때 그만했어야 했다, 그 말을 들었어야만 했다' 하면서. 참, 이상하고 아이러니한 것이다. '집안일'이라는 것은.

 

  어느 동네나, 누구나 한 번씩 소동의 주인공이 되어 볼 것이다. 2년 전인가 언젠가 우리 동네에선 내가 사는 빌라 2층 사는 신혼부부가 그랬다. 동그랗고 예쁜 딸이 태어나 방긋방긋 웃기 전에. 새댁이 빌라가 떠나가라 울었다. 그냥 우는 울음이 아니었다. 그건 너무 깊은 데서 찢어지며 나는 울음이라, 가까이 있는 누군가가 달래주지 않는다면 아무나라도 가서 멈춰줘야만 하는 그런 것이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나는 그 소리를 대번에 알아들었다. 그건 언젠가 내 속에서 났던 소리이기도 했으니까. 얼른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뭔가를 꺼내 나가려는 나를 만류하며, 엄마는 "원래 신혼 때는 저렇게 싸우기도 해~"라고 했다. 그러나, 아니다. 신혼 때고 뭐고, 누군가 저렇게 울어야 할 만큼의 일은 나서는 안 된다. 안 된다. 나는 말리는 엄마를 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문을 열어 준 남자는 설거지를 하던 중이었는지 고무장갑 낀 손이었고, 나는 슬쩍 눈알을 굴려 안을 살피며 "무슨 일 있으신가 해서요~"하며 가져간 걸 건넸다. 남자는 좀 짜증을 내며 "싸워서요. 죄송합니다."하곤 문을 닫았다. 다행히 누가 맞거나, 누가 때렸거나, 누가 찔렸거나, 누가 찔린 것 같지는 않았다. 싱크대엔 정말로 거품이 묻은 그릇들이 있었다.

 

  엄마는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나를 쿡 찌르며 귓속말을 했다. "그것 봐, 별일 아니잖아." 별일 아니었다. 별일 아니었다. 별 일 아니었다, 라…. 그날 나는 닫히는 문 사이로, "아내가 저렇게 울도록 둬서는 안 돼요."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당신 아내는 우는 게 아니라 죽고 있는지도 몰라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다. 바로 옆에서 그 울음을 듣지 못하는 남편들에겐 그런 소릴 들을 귀가 아예 없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변명이지만, 그 말을 하기도 전에 문이 닫히기도 했다.

 

  그 문이 닫힐 때였던 것 같다. 2층 여자가 우는 소리가 빌라에 울려 퍼지는 별것 아닌 소리, 그냥 주변 음이 된 게. 창자가 끊어져라 우는 소리도 설거지하는 남자를 맴도는 주변 음이 될 수 있는 세상. 내가 사는 세상은 바뀌지도 않고 그런 세상이니, 어젯밤 그 집 여자들의 소리도 주변 음일 뿐이었다. 듬성듬성 들리는 여자들의 부탁과 애원은 억울하고 미어지는 가슴을 털어대는 남자를 막지 못했다. 원래 막지 못한다. 나는 한국이라는 사회의 중년 남성들에게 흔히 찾아온다는 위기란 것이 그들에게 억울과 절망과 낙담, 실망과 자책과 우울과 불면, 후회라는 이름으로 온다는 게 쓸쓸하면서도, 왜 아무도 그들에게 '당신 옆의 그 소리를 들으라'고 가르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되도록 몇 번이고 들리고 또 들렸을 '주변 음'. 네가 미칠때 마다 가장 온전히 정신을 차리고 너를 목격했을, 막았을, 또는 절규했을 네 주변의, 인간. 그의 소리.

 

  이윽고 경찰이 왔다. 나한테는 '아직'인 일이 누군가에겐 '드디어'였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나보다 더 날카로운 감각이 있구나. 내게 '별일'의 상한선이 꽤 높다는 것에 놀랐다. 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놀랍게도, 유리 난장판이 됐을 그 집에 경찰이 오자 공권력 앞에 선 남자는 언제 취했었냐는 듯 멀쩡하고 또 멀쩡한 사회적 가면을 아주 잘 장착한 '사내'가 되어있었다. 그는 스스로 상황을 설명하고, "서에 가서 더 설명하겠다"며 어깨 펴고 당당히 경찰을 따라나섰다. 동네는 다시 잠들기 좋은 고요 속에 빠졌다. 아, 참으로 듬직한 가장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고, 참으로 우스운 장면이 아닐 수 없구나. 직접 보지 않고 소리로만 들었어도 아주 현실감 넘치는 비디오였다. 나는 그사이에도 계속해서 몇 번이고 "아빠"를 만류하는 딸의 소리를 들었다. 모든 상황이 끝났지만, 정적 속에 그 목소리가 자꾸 귀에 맴돌아 잠이 오지 않았다. 괜히 옆으로 돌아누워 베개를 만지작거렸다. 끔뻑-끔뻑. 눈을 떴다 감기를 반복했다.

 

  아, 나는…
나는 당신이 도망쳤으면 좋겠다. 그 평범한 집에서, 평범하고 또 평범한 그 집에서 나와, 또 다른 평범한 집이 아닌 다른 삶을 꾸렸으면 좋겠다. 그러나 높은 확률로 당신이 그러지 못할 거란 것을 안다. 그가 죽기 전까진, 당신은 당신의 남자를 챙기니까. 우리는 죽은 아빠도 가여워할, 어디서 주워 얻었는지도 모를 그런 심성을 가진 딸들이니까… 사람 같지도 않은 남편을 얻어 놓고는, 그의 사람 같지도 않음이 내 탓이라고 믿도록 자란, 딸들이니까.

이게, 이게 빌어먹을 우리들의 평범한 가정이니까. 평범하고, 평범한 우리들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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