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베짱이의 기쁨
그래, 나도 안다. 성우학원만 안 다니면 돈이 모일 거라는 거. 한 달에 40만 원이니까, 1년이면 480만 원에, 2년이면 천만 원 가까이… 나도 이 정도 계산은 된다. “그래서, 너 성우 될 거야?” 성우학원에 다닌다고 하면 당연히 이게 가장 궁금하긴 하겠지만, 저기에 대고 “될 리가 있냐~”하고 웃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나는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내가 성우학원에 다닌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않는다. 아니, 사람들은 자꾸 나의 ‘투자’에 ‘아웃풋’이 있을 것을 기대하는데, 여기서 아웃풋은 성우가 되는 것. 그래서 투자한 만큼 뽑아내는 것, 딱 그뿐이다. 휴직해서 생활비나 겨우 버는 주제에 적금 깨 가며 월 40을 쓰는 나는, 겨울이 닥치면 개미들에게 비웃음을 살 베짱이다. 개미들에게 내가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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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완벽과 흑역사 사이
흑역사. 문득문득 생각나 뇌리를 스칠 때마다 “아오 썅!” 눈을 질끈 감게 되는 것. 영화상영 도중에 잘못된 커트가 중간에 쓱 껴 들어간 것처럼 번쩍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이건 뭐,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무의식의 자기보호 기능인 것인지, 아니, 자기보호 기능이라면 차라리 싹 잊는 게 가장 자기 보호적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아무튼 희한하다. 머리를 아무리 털어대도 털려 나가지를 않는다. 내가 다니는 성우학원은 단연코 흑역사 제조장, 제조소, 제조 공장, 제련소, 흑역사를 딛고 역사를 만들어 가야만 하는 구덩이, 시궁창, 던전, 지하 감옥…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나에게도 선보인 적 없는 발연기를 해야 하니까. 목소리가 뒤집어지는 건 예사요, 장기라곤 없어 매번 도라에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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