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 문득문득 생각나 뇌리를 스칠 때마다 “아오 썅!” 눈을 질끈 감게 되는 것. 영화상영 도중에 잘못된 커트가 중간에 쓱 껴 들어간 것처럼 번쩍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이건 뭐,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무의식의 자기보호 기능인 것인지, 아니, 자기보호 기능이라면 차라리 싹 잊는 게 가장 자기 보호적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아무튼 희한하다. 머리를 아무리 털어대도 털려 나가지를 않는다.
내가 다니는 성우학원은 단연코 흑역사 제조장, 제조소, 제조 공장, 제련소, 흑역사를 딛고 역사를 만들어 가야만 하는 구덩이, 시궁창, 던전, 지하 감옥…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나에게도 선보인 적 없는 발연기를 해야 하니까. 목소리가 뒤집어지는 건 예사요, 장기라곤 없어 매번 도라에몽 노래로 때우는 내게 쏟아지는 격려의 박수 뒤에 숨은 안쓰러운 눈빛 같은 것… 잊어버리기로 하자! 어쩔 수 없다! 여기는 필연적으로 그런 곳이다. 다행 중의 다행인 건 어쨌든 학원에 모인 모두가 감옥에 갇힌 신세기 때문에 서로서로 격려와 호응으로 맞받아쳐 주는 그런 분위기… 다시 말해 따뜻한 감옥이라는 것…. 아, 고마워라.
잊지 말자. 이 세상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게 “사람들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잊지 말자! 흑역사는 나에게만 흑역사일 때가 더 많다. 흑역사를 지우고자, 누군가에게 그걸 고백하지 마라. 그는 잊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걸 떠오르게 하지 마라. 그건 너만의 흑역사였다! 어느 대본의 무연고자(無緣故者,가족이나 주소, 신분, 직업 등을 알 수 없어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를 “무연, 고자”로 읽었던 너… 나는 네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안 난단 말이야. 그저 그 단어만 선명할 뿐이야! 발작을 일으키는 상대역에게 “천식이에요? (갖고 다니는) 네뷸레이저*없어요?”라고 물어야 하는데, 허공에 대고 “네뷸레이저! 없어요?” 하는 바람에 네뷸레이저를 졸지에 파워레인저급의 영웅으로 만들었던 너… 너는 기억난다, 친구야. 그치만! 그게 너를 부끄럽게 만드는 기억으로 난다는 게 아니라, 네뷸레이저를 그렇게 부르면 배꼽 찢어지게 웃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하고 싶은 거야, 나는!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니들도 다 잊어. 나에 대해… 그게 뭐가 됐든, 다 잊어. 렛. 잇. 고우. 가릿?
모두가 그렇듯 나도 약간, 아니 약간에서 약간 더 벗어나 높은 정도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건 나에 대한 자만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상대에 대한 높은 기대 수준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삶에 대한 통제욕으로 부글부글 끓기도 하고, 다른 말로는 강박, 불안이다. 나는 가끔 ‘뭣도 안 될 거라’는 불안에 아무것도 못한 채 시작점 앞에만 초조히 서 있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은 실전… 즈엔자앙. 통제 불능의, 맥락 없고 천방지축인 게 인생. 나는 그 실전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 완벽주의를 어느 정도 갖다 버리는 게 내 신상에 좋다는 걸 배우게 되었는데, 어딘지 ‘완성’ 같은 건 없는(연기에 완성이 어디 있겠는가?) 성우학원의 일들이 내게 큰 도움을 준다. 대본을 받아들면 어쩔 수 없이, 뭐가 됐든 해야 되거든. 준비할 시간도, 가진 재능도, 경험도 없이, 그냥! 그러니 그 시간은 ‘어떻게 더 완벽하게 할까’보다, ‘어떻게 준비해서 보여줄까’보다,
‘어쩔 수 없어.’
‘이게 나야.’
‘준비해 와봐야 비슷해.’
‘그냥 하는 거야.’
‘다들 그냥 하잖아.’
‘그게 뭐 어때서. 아이, 다음에 연습해오면 더 낫겠지’가 지배하는 시간이다. 멍석을 깔아 주었으면 애매하게 하는 게 더 창피한 것…. 누가 멍석을 깐다? 그럼 나도 나의 철판을 깔고 최선의 것을 뽑아내야 한다. 내가 뽑아낸 게 최선이다. 그걸 인정해버리면 나는 온전히, 그 순간을 산다.
가끔 학원에서 내주는 숙제를 못 한 채로 다시 학원에 갈 날이 돌아온다. 그런 날엔 ‘아, 가지 말까….’ 싶다. 그러나…그러나… 그래도 간다, 학원! 으아아아!! 사실 나는 숙제 못 했다고 학원도 못 갈 만큼 완벽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이것은 정말이지 인생이 ‘다 준비되어야만 시작될 수 있다’는 쫄보 마인드요,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니 배울 것도 없을 것이다’라는 미련퉁이 중의 미련퉁이 마인드인 것이다. 배움은 언제 어디서든 내 생을 치고 들어오니, 준비되지 않았으면 않은 대로, 그래서 창피를 당한다면 당하는 대로 배우고 오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준비되지 않은 순간들은 대개 민망함과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나는 ‘완벽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 순간을 직면했다. 어찌 됐건 그 순간을 살았다. 허접하든, 엉성하든, 임팩트 같은 건 1도 없었든, 일단 했으면 됐다. 실전이었으니까. 그러면 끝이다.
이런 글을 남 앞에 내 놓는 것도 비슷한 심정이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나도 내 글을 남 앞에 보이는데 많은 용기를 낸다. 좀 더 묵혀두었다가 더 나은 글을 골라 선보이고 싶고, 첫 글부터 아주 잘 구성하고 엮어서 멋진 시리즈로 만들어 내고 싶고… 그러니까 결국엔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에요.”하고 싶은 거다, 맨-처음부터. 그렇지만 나는 나다. 내 글도 나다. 딱 나다. 더 나은 무엇일 수 없다. 나는 자꾸만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지금의 나를 버리고 저 앞의 미래로, ‘되고 싶은 나’를 나로 착각하는 나를 앉혀놓고 써 내려간다.
-나는. 개똥 같은 글이라도. 일단. 쓰고 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글은. 아무도. 안. 본다.
-그러니. 아무도. 안 볼 때. 신나게 쓰자.
나는 오늘의 나다. 어떤 미래의 내가 아니다. 그저 지금도 또 한 건의 흑역사와 흑역사가 될 글을 써낸 내가, 나다. 그리고 이게 내가 되고 싶은 나다.
오늘의 완벽에 마음 쓰지 않는 사람.
허접해도 해 버리는 사람.
부끄러우면 그냥 얼굴을 붉히고 혀를 좀 내민 담에 웃고 말자.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지, 더 이상을 어떻게 해?
그래도, 조금씩 나아진다 분명히.
그런데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다. 나아지지 않아도. 잘하게 되지 않아도. 스스로 몰아붙일 게 뭐 있나. 오늘만큼 살았으면, 그랬으면 됐다.
아, 나는 아무래도… 완벽해지고 있나 보다.
*Nebulizer, 약물을 미세한 입자로 만들어 기관지 등에 직접 닿게 하는 인공흡입기
* 매주 화/목 나타납니다. 성-우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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