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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어수선/코타키나발루 유배기

18. 손님들과 움직이는 집 Alone and together

 

  어김없이 집 안에서 멍을 때리던 어느 날이었다. 민트색 1인용 소파 위에 누운 듯 기대있던 나는 문득 눈알을 굴렸다. 사방이 조용했다. 동생은 침대방에서 한낮의 햇볕을 온몸으로 맞으며 잠들어 있고, 개미들만 소리도 없이 바삐 움직이는 오후였다. '저…쓰레기통이…' 위로 올라갈수록 입구가 넓어지는 하얗고 우아한 쓰레기통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집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 혼자 있을 땐 내가 몸을 파묻고 사는 1인용 소파 옆에, 사흘 밤낮을 수다 떨며 보낸 친구와 함께 있을 땐 거실에서 부엌으로 가는 길목에,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자꾸 뭘 먹게 되는 동생과 있는 지금에는… 식탁 밑으로 갔군?

 

  의식적으로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바꿔야지' 하고 큰맘을 먹었던 적도 없다. 이상하고도 희한한 일. 혼자 있을 땐 소파 옆에 있는 게 최적이었던 이 쓰레기통이 친구와 둘이 있을 땐 소파 옆에 있어서는 안 됐다. '우리'의 생활이 티 나게 불편해졌다. 당연하다. 하나였다가 둘이 됐으니 둘 중 하나만 쓰는 소파 옆에 있어서는 불편한 게 당연하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동생과 둘이 있는 지금도 둘이기는 마찬가지인데 쓰레기통 위치가 바뀌어야 했다는 거다. 지금 '우리'의 생활에는 쓰레기통이 식탁 밑에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딘지 불편하고 귀찮은 동선으로 몸을 쓰게 된다.

 

  누가 누구와 사느냐에 따라 공간이 스리슬쩍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용히. 그러고 보니 달라진 건 자주 쓰는 물건의 위치뿐이 아니다. 이곳에서의 내 생활도 파트너가 누구냐에 따라 미묘하게 바뀌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은 같아도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은 달라진다. 파트너가 깨기까지 기다리며 하는 일의 성격과 순서가 달라지고, 첫 끼니를 먹는 시간과 잠드는 시간도 달라졌다. 장소는 계속 코타키나발루고 나는 여전히 나인데도, 매일이 계속해서 다른 것들로 채워진다. 지금처럼 나름 '여행' 중에는 하루에 몇 군데의 관광지를 둘러볼 것인지, 또는 관광지는 생략하고 그저 바닷가에 가서 시간을 보낼지, 온 하루가 새로이 세팅된다. 파트너에 따라서.

 

  갑자기 조금 무서워진다. 공간까지도 사람에 맞추어 모습을 바꾸어주는 판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리 없다는 게 새삼 낯설고 두렵다. 서로 에너지와 파장을 주고받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맞추고 조정해가며 관계를 맺는다는 거. 정말이지 자연스럽게, 우리는 모두 그런 수고를 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혹시 내가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거친 파장에 찔려가면서까지 나를 맞추고 있다든지, 가끔 아무도 허락하고 싶지 않은 내 에너지가 다른 사람을 격하게 밀어내고 있을 것을 상상하곤 무서워지는 것이다.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지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스물 몇 살의 일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동행과 아무 생각 없이 반나절을 함께 했는데, 혼자 있을 때의 고요함과 누군가를 배려한답시고 갑자기 시끄러워진 마음이 대비되어 아주 감각적으로 깨달았다. 나는 내 것을 주장하기보다 다른 이의 에너지가 머물 공간을 만들어내는 유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단단하지 않으면 남을 배려하느라 자꾸만 나 자신을 놓친다는 걸 알게 된 거다. 그래서 그 이후에도 종종 생각하길 '내 삶터에는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정말 많으니, 나는 분명히 나도 모르게 자꾸만 나 자신을 뒷전에 놓고 있을 것이다!' 나를 챙기려 경고처럼 되뇌곤 했다. 여행만큼은 혼자서 하자는 욕심을 낸 것도 그때부터인 것 같다.

 

  혼자인 여행은 나만의 바이브를 단단하게 고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혼자 있는 내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그 시간을 충분히 보낸 내가 얼마만큼 누군가를 끌어안을 수 있는지 보게 된다. 또 내가 타인에게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쏟는 사람인지를 극명하게 느껴보면, 진짜 '나'라는 것에 조금 더 가까이 가볼 용기가 생긴다. 나 자신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마다 두려움 없이 더욱더 혼자이기를 갈망하게 된다. 물론 이번 여행은 예기치 않게 나 홀로 여행이 된 거지만. 나는 앞의 20일은 혼자 지내고 뒤의 2주간 세 명의 손님을 맞이한다. 혼자와 함께가 섞인 여행을 할 때는 이 순서가 좋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가진 마음의 공간을 훅 내어준 후에 혼자가 되면, 남은 시간은 외로움만 깊어지기 때문이다. 아주 적절한 배치다.

 

  돌아보니 이 코타키나발루에 나를 찾아온 손님들이 어찌나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지, 나는 쓰레기통이 옮겨 다니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내 생활 패턴이 바뀐 것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합이로다! 이렇게 서로를 해치지 않을 관계가 내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 이제야 고마워진다. 내가 다시 사회생활을 하고 새로운 누군가를 마주할 용기를 낸다면, 그건 다- 나의 어떠함을 아무렇지도 않게 끌어안아 준 이들 덕일 것이다. 이틀 뒤 도착할 마지막 손님, 엄마가 오면 저 하얗고 우아한 쓰레기통이 어디로 옮겨가게 될지 유심히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