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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재담꾼 이반지하 칼럼 / 나도 한때는 언니들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https://switch.changbi.com:8993/serial/chapter_info/43/298?bread_date=%ED%99%94%EC%9A%94%EC%97%B0%EC%9E%AC 

 

그럼 이제 나의 언니였던, 존경하거나 흠모했던 과거의 당신들을 지금의 나는 무엇으로 부를 수 있을까요? 나는 그것이 [형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러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습니다. 위대한 당신들을 언니라고 부르는 순간, 당신들이 여자가 되어버리는 게 나는 너무 싫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을 부르는 나 역시도 너무 높은 확률로 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적잖이 부대낍니다. 적어도 [형님] 정도는 붙여줘야 당신들의 격에도 맞고 내게도 적당히 균형이 맞춰지는 느낌이 드는 건, 내 성 관념이 대단히 비뚤어져서가 아니라 세상이 너무 언니를 여자로 만들었던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살면서 내가 언어를 이길 수 있을까 많이 생각해봤고 도발도 해봤지만, 경험적으로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언니는 게이들한테 주고, 나는 성님들이나 떠받들고 살려 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 되고 팠다기보다 그냥 '여자'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자도 괜찮다, 여자도 할 수 있다 정도의 위로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에 기운을 얻었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세상이 말하는 '여자'와 화해하고 타협할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정말로 큰 숨막힘을 느꼈습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나졌고 여자로 취급받았고 그래서 그 경험이 아닌 나를 구성할 수 없다지만, 나는 그것만으로 살아지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여자'를 외치면서도, 내가 '여자'인 걸 싫어하고, '여자'를 잃지 못하면서, 동시에 '여자'가 되는 길을 다 망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게 전부, 굉장히 괜찮은 사람인 '나'라는 인간입니다.

 

(...) 이 문제에 있어 미워할 여유 같은 게 나한테 애초에 가당키나 할까요. 질문 아니니까 대답하지 말아주세요.

 

형님에 대한 존경은 충분히 표했으니, 이제 내 주변의 평범한 어중이떠중이들이나 부둥부둥하며 살려고 합니다. 형님은 형님대로, 나는 나대로 그렇게 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이 편지를 쓰면서 생각해보니까, 누구를 부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냥 내가 언니고 형님이고 다 해먹어도 되겠다 싶어졌습니다. 내 허물은 남의 것보다 작아 보이는 법이니까, 나는 내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환영에 사로잡히려고 합니다. 결국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닐까 싶네요. 앞으로도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트러블대로 살아가도록 합시다.

 

 


 

귀 염 둥 이 이 반 지 하

대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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