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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배우 이정은 인터뷰 / 지금 조용하지만 내겐

 

지금 조용하지만 내겐 굉장한 힘 있습니다, 보여주는 거죠

배우 이정은 약력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했다. 영화 <와니와 준하> <마더> <변호인> <카트> <곡성> <옥자> <택시운전사> <기생충> <자산어보> 등에 출연했으며, 백상예술대상 티브이(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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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왜 이름이 없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었어요. 함안댁 하면 함안 사람 어디쯤을 상상하며 여러가지를 해볼 수 있잖아요. 이름이라는 정확한 규정이 있으면 갇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으니까. 왜 이정은이라는 이름만 해도 우리 때는 한 반에 5∼6명씩 있었어요. 색채가 없지, 이름이. 그래서 연극할 때만 해도 다른 활동명을 가져볼까 진지하게 고민했었거든요. 근데 이 또한 돌아보면 ‘색채 없는 이름’이 배우 생활에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사람들에게도 다 각자의 삶이 있어요. 역할도 마찬가지죠. 존재하는 사람을 존재로서 대해야겠죠.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 중에 낭비되는 역할은 없다고 봐요. 그 명제 아래 창의성을 발견하고 개발해야 하는 게 조연들이 할 일이고요. 무명의 역할이었음에도 무명의 존재가 제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 그래서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고요.

 

그런데요, 아무도 나한테 관심을 갖지 않는데 나조차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살려줄 수 있겠어요? 내 역은 나 아니고는 아무도 못 해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사실, 이 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시작이 나로부터 출발한다는 걸 연기로 피력하는 거죠. 지금 이렇게 조용히 있지만 내게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라고.

 

지금까지 내가 연기할 수 있었던 게 원대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었으니까. 앞으로 갈 길도 마찬가지예요. 오늘을 잘 살면 내일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니 오늘 할 일 미루지 말자 하면서.

 

같은 일을 먼저 겪었다 해도 그 사람은 충분히 다른 지점에 도착할 수도 있는 건데, 단지 내가 먼저 살아봤다는 이유로 방향을 먼저 말해서 초를 치는 경우는 만들지 말자.(웃음) 선수를 쳐서 그 사람에게 해결책을 주거나 답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봐요. 그 대신 내 삶에 대해서는 내가 적극적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가르치기보다 내 삶으로 보여주는 게 맞지. 내가 좋아하는 선배들은 다 그렇게 존재하는 분들이셨더라고요.

 

점점 새로운 역할을 맡을 때마다 큰 용기가 필요하고, 책임감도 따라요. 그렇지만 책임감을 짐 진 얼굴로만 살 수는 없으니까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싶고요. 운 좋게 비중 있는 역할을 받을 때 ‘아니요. 저는 이만큼만 먹고 살겠습니다’ 할 수도 없으니 자꾸 도전해보는 거죠. 실패하더라도. 그리고 실패할 수도 있죠.

 


 

내 역은 나 아니고는 아무도 못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