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본다는 사람들은 분명 시인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저 밤하늘에서 작은 빛을 내는, 정확히 어디 있는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에 마음을 쏟는 사람들. 그 사랑하는 별에 한 발 내딛어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대도, 마음만은 온통 그곳에 가 있는 사람들. 학교와 일터와 슈퍼마켓과 교회, 자동차와 빌딩과 아웅다웅하면서도 그 넓은 우주를 감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시인과 같다. 누가 그랬지? 시인이란 '하염없는 사람'이라고. 그래, 하염없는 사람들. 우주라는 신비 속에서 하염없이 외로운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가슴에 커다란 구름이 한 덩이, 딱 한 덩이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2017년 9월 11일. 나는 그때 부터 죽음을 겪었다. 그건 처음 겪는 일인 데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서, 어느 정도 슬픔에서 빠져나온 지금도 내 가슴 속 가장 밑바닥에는 '사람은 왜 죽는 걸까'라는 말이 웅웅거리고 있다. 그날부터 죽음은 내 살갗에 바짝 달라붙어 살아있는 모든 것을 미워하게 했다. 나는 9월 11일에 죽은 아빠를 따라, 내가 따라 갈 수 있는 만큼 가까이 갔던 것 같다.
시간이라는 건 이상하다. 뒤로 돌릴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게 정말일까 싶다. 나는 아빠가 죽은 9월 11일 이후 수없이 다시 그날로 돌아갔고, 도저히 그날을 벗어날 수 없어 그 주위만 맴돌았다. 나는 몇 번이고 9월의 그 날로 돌아갔다. 그 날 있었던 모든 일을 기억 속에서 되돌렸고 기록했다. 아빠의 죽음이 아니었더라면 그냥 흩어져 없어졌을 모든 것들이 내게로 돌아왔다. 아빠만 빼고. 나는 지나간 시간을 그렇게 돌려 살았다. 아빠는 가루가 되어 이제는 보거나 만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지금의 나는 9월 11일 이전의 여느 날들처럼 아빠가 여전히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아니,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안다. 아마도 나의 일부는 2017년 9월 11일 이전을 사는 것 같다.
별과 우주 얘기에는 늘 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별들은 각자의 시간을 살고, 우리 눈에 드디어 보인 어떤 별은 이미 8년 전에 죽은 별이라는 것, 내가 보고 있는 저 태양 빛이 8분 전의 태양이라는 것, 높은 곳의 시간은 낮은 곳의 시간보다 빠르게 간다는 것.... 그래서일까. 별, 우주, 비행기, 은하수가 그려진 메모지. 내 꿈에서 아빠는 이런 것들과 함께 등장한다. 너무 멀리 있어서 잠깐씩 끊어지는 통신으로 나에게 안부를 전한다. 은하수가 그려진 메모지 위에 아빠의 글자들이 지직, 지직 나타난다. "해준아" 내 이름을 쓰는데만 한참이 걸리고, 통신은 끊겨버린다. 그런 꿈들을 꾼 뒤로 나는 아빠를 그릴 때마다 별과 우주, 저 먼 어떤 곳을 생각하게 됐다. 홀로그램 색종이, 이런저런 빛을 한꺼번에 내는 미러볼, 분홍과 보라색이 절묘하게 섞여 있는 메모지, 지구 북쪽 어딘가에서 나타났었다는 오로라 사진 - 그런 것들에서 아빠가 있을 다른 세계를 본다. 내가 사는 지금 여기와는 다른 어떤 곳. 시간의 흐름까지도 다를, 지금은 내가 가 닿을 수 없는 아빠가 있는 어떤 곳.
별이 태어나고, 그 별이 자신의 생을 다 할 때까지 힘을 쓰고 나면 다시 맨 처음의 상태로 돌아간다고 한다. 별이 아니었던 때처럼 흩어진다. 그리고 흩어진 잔해들 속에서 또 다른 별이 태어난다. 인간인 나나 고양이인 완두나, 우리동네에 심심찮게 보이는 까치나 딱정벌레나 무당벌레나… 모두 별처럼 우주에 있는 물질을 그러모아 지어졌고, 자라고 또 자라면서 힘이든 에너지든 그 정점을 찍은 뒤에는 늙고 쇠약해져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으로 다시 원래의 물질로 돌아간다…. 내가, 내가 되기 전의 어떤 것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게 무척 아름다운 일이라는 걸, 도서관에서 별과 우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찾아 읽고 오는 길에 알게 되었다. 한 차례 장맛비가 내리고 난 다음이었다. 도서관 옆 까치산의 풀내음이 공기 중에 흩어져 있었고, 축축한 습기가 내 온몸을 감쌌다.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이 비가 되고, 눈이 되어서 오는지도 모른다. 그래, 죽는다는 건 아름다운 거다. 내가, 내가 있기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정말로 아름다운 일이다. 가슴에 꼭 품어지지도 않을만큼의 어떤 벅참이 가슴을 채웠다. 지금 아빠는, 아름답다. 나는 크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외로워졌다. 하염없이 외로워졌다.
2019.07
'대개는 어수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실패한 소설에 대해서 (0) | 2020.05.10 |
---|---|
도태된 인간의 새로운 삶 (0) | 2020.05.03 |
햇빛 주세요 (0) | 2020.04.06 |
사소한 헤어짐 (0) | 2020.03.29 |
의사 선생님께 : 명의가 되는 법 (0) | 2020.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