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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어수선/코타키나발루 유배기

6. 끈 떨어진 연 How I burned out

 

  "왜 어떤 사람들은?"

이게 나를 따라다닌 질문이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을 겪어야 해?" 나는 아마도 스스로 초래하지 않은 고통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이 개인들의 노력을 쉽게 입에 올리고 인과응보를 얘기해도, 사실 그렇지 않은 일이 대다수였으니까. 나는 어찌어찌 간 대학에서 그런 것을 배웠다. 보이지 않는 사회라는 것이 개인의 삶을 얼마만큼 조져놓을 수 있는지. 나는 그런 것에 눈이 갔다. 인간이라는 종에게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했고, 그래서 가능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싶었다.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나는 저 질문이 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도 모른 채 졸업 후 오랜 시간을 한 분야에 몸담았다. 한순간에 삶을 통째로 잃어버린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만났다. 그게 내 일상이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국가, 정부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방치하고, 굶기는지를 봤다. 돈이 없고 '등록 번호'가 없으며, 자신을 '보호'해 줄 나라가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범죄자로 만들어 후드려 패는지를 봤다. 사람들이 실체 없는 정보에 얼마만큼 두려움에 떨 수 있는지, 그 두려움이 어떤 칼날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찌르는지도 봤다. 아름답지 않은 일이었다.

 

  삶이 무한정 버려지고 있었다. 아무도 믿어주려 하지 않는 사진과 증명서 쪼가리를 들고 3년, 5년, 8년을 꾸역꾸역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은 바짝 말라, 언제든 가루가 되어 부서져 내릴 것 같아 보였다. 떠날 수 없는데 떠나야 하는 이들의 삶은 쉬이 끝나지도 않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디에도 등록되지 못한 채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던 존재가 되어 자랐다. 나는 내가 나를 존엄하다고 여기는 마음과 내가 가진 자존심 같은 것들이 얼마만큼 극한 환경에서까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곤 했다. 그게 과연 나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것인가, 아무래도 그건 그저 어떤 행운-운 좋게 충분히 안전할 만큼 주권을 가진 나라에 태어난-에 의지하고 있는 것 같다, 싶었다. 그렇게 아무 노력 없이 얻은 행운이 버거워 "그러면 (이런 행운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제 보니, 그런 내가 기독교를 멀리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내가 믿어온 한국의 기독교는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에 무지했다. 그것은 언제나 당당하고 폭력적이리만큼 꼿꼿했다. 가끔은 모두가 자신의 성화(聖化)를 위해 마음이 찢긴 사람들을 이용해 먹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안전하고 부유한, 이 대한민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목숨 걸고 국경을 넘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가르침이란, 아니 그 태도란 참으로 오만한 것이었다. 대학 생활전부를 '예수' 그 이름 하나에 쏟아부었던 나 자신의 오만함이 함께 무너졌다. 나는 신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졌다. 내 입을 다물게 한 것이 신인지도 몰랐다. 나는 무언가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그 무언가를 하지 않고 기도만을 운운하는 사람들을 떠났다. 울었다. 슬펐고 화가 났다. 마음이 무너질 만큼 실망스러웠다.

 

  우습지만 결혼을 해야 하는 줄 알고, 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사람과 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그를 좋은 사람이라 여겼는데, 결혼하고 나니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곤 그게 자신을 무시한 나 때문이라고 우겼다. 키는 무척 큰데 마음은 쥐똥 만한 사람이었다. 쥐똥만 한 마음으로는 누군가와 살 수 없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나만 알았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고통받았다. 내가 왜 고통스러운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고통스러웠다. 완고한 가부장제 아래서 아내와 며느리의 말은 어떻게 해도 말이 아니었음은 나중에야 알았다. "니-가 먼저 그랬잖아아!" 고작 이런 말을 큰 소리로 내뱉는 사람과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것임을, 이제는 누가 이해해주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몇 년 전 그를 떠났다.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배신감, 여자가 남자와 똑같을 수 있다고 믿게한 세상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다.

 

  나를 이 세상과 이어놓던 끈들은 사실은 그다지 튼튼하지 않은 것들이었음이 틀림없다. 어떤 신념이나 믿음 같은 것들, 당연하게 생각했던 삶의 기초들. 그것들은 원래 그러기로 예정되어있었다는 듯 하나씩 툭, 툭 끊어졌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지탱해 주었던 건가, 그 얇고 가느다란 끈들이 진작 끊어지지 않은 걸 감사히 여겼어야 했던 건가. 내게 세상은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고, 안전하지도 않은 곳.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사람들은 휘청휘청 국경을 넘어야 하고,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벌 받는 사람과 동물이 수두룩한 데다, 영원히 살지 못하는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더는 몸을 쓸 수 없게 되면 세상을 떠난다, 우리 아빠처럼. 나는 그런 것들이 서러워 하염없이 허공에 대고 울고 있었다.

 

  나는 때마다 '왜'냐고 물었던 나를, 답이 나오지 않아 분한 마음에 가슴을 뜯을지언정 가만히는 있지 않았던 나를 후회하지 않는다. 아마 그놈의 '왜'가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놈의 '왜'를 끌어안고 세상 짐 혼자 다 진 듯한 얼굴로 오만한 내 꼴이 우습다. 나를 자꾸만 구덩이에 집어넣는 건, 슬픔의 뒷면엔 기쁨이 있고, 고통의 뒷면에 구원이 있고, 죽음의 뒷면에 삶이 있음을 보지 못하는 나 자신이다. 지나온 골짜기들에 피어있던 꽃들은 진짜 꽃이 아니라고 우겼던 나 자신이다. 신이라도 된 듯 어떤 완벽한 그림을 원하고, 이 세상을 용서할 수 없어 주먹을 꼭 쥐고 있는 나. 그러나 정말로 세상은 아름답지 않은 곳인가? 정말 내가 본 그뿐인가?

 

  한 번, 두 번, 세 번, 끈 떨어진 연은 그렇게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가 여기, 코타키나발루에 와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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