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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어수선/코타키나발루 유배기

3. 밤 비행기 Squid's Night

 

  밤 비행기는 황홀했다. 창가에 자리를 잡은 내 눈에 별들이 와서 박혔다. 내가 앉은 자리는 비행기의 왼쪽 날개 바로 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별을 기준 삼아 내가 향하는 방향을 가늠해 보았다. 세 개의 별이 나란히 선, 이름 모를 별자리가 눈에 띄었다. 그 별 세 개는 다른 별들보다 유난히 더 밝았는데, 내 시선에서 비행기 날개 왼쪽 하늘에 있다가, 날개 끝에 걸려 있다가, 날개의 오른쪽 하늘로 갔다가, 다시 왼쪽에 자리했다. 별이 움직이진 않았을 테니, 나는 하늘을 보면서 '비행기가 오른쪽으로 조금 꺾어 나는구나'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구나', '많이 틀었구나' 머리를 굴렸다. 저 별들을 한데 모아 이름을 붙여주지 않고는 밤을 견딜 수 없었을 아주 오래전의 누군가를 생각했던 것도 같다.

 

  밤 비행기는 여러모로 황홀했다.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파리 투나잇 Party Tonight'의 장이었으므로. 비행기 안에는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시켜 먹고 있었다. 내 옆자리의 부부는 구운 오징어를, 내 뒷자리의 청년들은 라면을, 두 칸 앞의 젊은 부부는 아이를 위해 치킨 너겟을 주문했다. 저가 항공이라 모든 음식이 고가임에도 나만 빼고 파티를 열기로 미리 약속이라도 돼 있었단 듯, 비행기 안은 풍성한 파티 그 자체였다. 승무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잠깐의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은 신나게 조잘거렸다. 곧이어 승무원들이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자, 나는 코를 뜰 수 없어 눈만 뜨려 애써야 했다. 구운 오징어. 그 녀석들. 구운 오징어가 착륙 직전까지 중년 부부의 몸속으로 분해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숙성된 채 중년 부부의 입을 통해 살아나려 하고 있었고 거의 되살아났다. 그날 밤, 우리가 탄 비행기가 1분이라도 일찍 활주로에 내렸다면 그것은 온 신경을 '시각'에만 몰두하여 간절히 하늘을 우러러본 내 덕일 것이다...

 

  나는 다음 날 해변 근처의 도서관에서 몇 권의 책을 뒤적이다 내가 비행기에서 본 별들이 오리온자리의 벨트 부분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벨트 부분: 잘 보이는 게 특징'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리온자리. 내가 탄 비행기는 오리온자리의 별들 앞을 매끄럽게 날아 말레이시아에 내린 것이었다. 오리온자리는 나를 봤을까? 조그만 창 안으로 숨을 헐떡이는 내 모습을 보고 조금은 웃었을까? 까만 밤, 창문마다 불을 켜고 하늘 위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창밖만 바라보며 최대한 코를 벌렁이지 않으려 애쓰는 내 모습을 돌이켜 생각하면 좀 웃음이 난다. 내가 저 밤하늘 사이로 사라져버리지 않게 자꾸 나를 불러 사람들 속에 앉혀 놓는 구운 오징어, 라면에서 올라오는 수증기, 들뜬 얼굴들, 코타키나발루를 자꾸 코딱지와 연관 짓는 게 어린 자식들의 눈높이인 척하는 아빠들... 내가 사는 세상.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세상이 나에게 시도 때도 없이 알려준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 나를 불러 앉혀 "너는 저 하늘의 고고한 별이라기보다는 숙성된 오징어 냄새에 가까운 지구인이란다." 알려준다. 나는 이 하나도 매력적이지 않은 고마운 삶이 싫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