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는 어수선/뱃지를 줄게 썸네일형 리스트형 장수할 운명 여름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감각은 아빠가 돌아가신 후 얻었다. 그전에는 ‘언제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한 50년 뒤?’라고 확신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아빠가 우리 중 첫 타자로 어나더 월드 Another world 입장한 후에 알게 된 거다. 그 ‘언제’라는 것이 실제로 지금 당장 또는 오늘 밤 또는 내일 아침일 수도 있다. 이 자각은 실로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시도 때도 없이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애니메이션 의 천국 문 열리듯이 규와앙- 열리고, 뭐라도 할라치면 시즌4에 나오는 저승 괘종시계가 디용디용 울려 현생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자꾸만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해서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마음속 진물이 눈물과 함께 터져 흘러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시간.. 더보기 재난대책본부 인간 폭탄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중국 냉면을 사랑한다. 일터인 묘지에서 일하는 모두가 열광하기에 나도 한 번 시켜봤는데 투명한 국물에 살얼음이 살살살 올라간 것이 은은하게 달콤하고 차갑고. 거기에 면은 어찌나 쫄깃한지, 푸짐하게 올라간 야채들과 함께 먹으면 아삭과 쫄깃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잊지 말고 땅콩소스를 듬뿍 넣자~! 혀가 호롤롤로 녹아내리면서 만세~!를 부르고 여름은 지나간다. 나의 8월은 이렇게 갔다. 중국 냉면의 맛. 이게 내가 묘지로 출근하며 알게 된 것 첫 번째다. 두 번째는 공기 중 유해 물질 냄새의 유효기간이다. 내가 처음 면접을 보러왔을 때만 해도 코를 통해 들어와 뇌를 찌르던 신축 사무실의 유해 물질 냄새가 3주가 지나니 90% 이상 빠져 미미해졌다. 냄새로 느껴지지 않는 유해.. 더보기 피읖 ‘풍채’ 할 때 피읖 풍채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는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겉모양’으로만 쓰여있어 사전적으로는 캐스퍼 아닌 이상에야 모두에게 풍채는 있는 것인데, “햐, 거 고놈 참 풍채가 조-ㅎ타”라고 할 땐 뭔가 어깨도 좀 있고 딴딴하고 건강한 느낌이다. 포동포동까지는 아니어도 몸집으로부터 너그러운 뭔가가 흘러나오는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나는 풍채가 없다. 풍채를 갖고 싶다. 풍채를 내놔라. 풍채 좀 가져보자~! 이렇게 욕심을 단단히 품고 나서, 나는 풍채로 가는 길 위에서 체중의 앞자리를 바꾸었고! 꿈의 풍채도 머지않았다. 지금 내 통통한 배에 붙은 피읖 배지가 풍채로 가는 첫걸음이다. 저체중의 비애는 과체중의 그것과 같으며 다르다. 적정하다고 정해진 무게를 향해 가는 길이 무척 고되다는 점에서 같.. 더보기 돌잡이 I’m Thirty Three 난 몹시 예민해요 하나만 골라야 한다, 하나만. 오로라색 위시 리스트와 빨간색 생필품 리스트에 적힌 것들 중에서 딱 한 품목만! 위시 리스트에 든 애들은 어찌나 순하고 아름다운지. 언제 열어봐도 여유 있는 자태로 슴벅슴벅 긴 속눈썹을 자랑한다. 우구구구, 이쁜 것들! 언제 너희를 데려올 수 있을까? 아이구, 이뻐~ 아이구~! 이에 반해 생필품 리스트에 든 녀석들은 상당히 위협적인 송곳니를 드러내며 언제든 내 목덜미를 물어뜯겠다고 그르렁댄다. “즉시 구비하지 않으면 후환이 따를 것…” 어휴. 알았어, 알았다고 이 자식들아…! 이 생필품 리스트에서 6개월 연속 1순위를 차지했던 프라이팬은 음식들을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재촉했다. 그 녀석이 두부든 뭐든 올려놓는 .. 더보기 털갈이 삶의 형태가 바뀌는 아주 드문 기회 서울을 떠난 지 갓 1년이 넘었다. 얼마 전엔 일자리까지 이곳에 잡았으니 나는 이제 웬만하면 서울에 가지 않고도 생활이 되는 ‘완전 로컬'이다. 이사 후 한동안은 서울과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 물리적 거리도 가깝다는 착각에 빠져 사느라 고생을 좀 했는데, 요새는 정신 차렸다. ”사당역? 거기 내가 잘 알지. 이수역 거기, 바안포? 챠-하, 눈 감고도 훤하지. 어, 그래 거기서 보자. 강남역? 조-취.”하다가 좌골 신경통이 찾아와 내 뚝배기를 쳐 주었기 때문이다. 좌골 신경통이 말했다. “이 파-보야~! 왕복 네 시간은 결코 가까운 것이 아니야!” 나, 차 없는 경기도민- 이제 웬만하면 경기도를 벗어나지 않기로 했다. 아, 경기도여... 너는 서울과 얼마나 가깝고도 먼지.. 더보기 묘지기 나는 매일 천국으로 출근해 엄마는 매일 기도한다. 기도 목록에는 일용할 양식도 포함되어 있는데, 뭐,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걸 기도하면 자동으로 기도가 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게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새벽마다 배송되면 참 좋겠는데… 하느님은 꼭 나한테 일을 시킨 다음 엄마한테 갖다준다. 내가 이걸 좀 피해 보려고 파테크를 시작하고 인플레이션 대비차 상추 씨앗도 심었던 건데. 일 시킬까 봐. 하지만 안타깝게도 둘 다 망해버렸고, 망한 것이 확실해진 시점에 로션과 선크림이 한꺼번에 떨어졌고, 내 사랑하는 식물들 중에 희귀 식물은 단 한 종도 없기 때문에 당근에 팔 수도 없는 상황에서 24롤 두루마리 휴지를 신용카드로 살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 대금을 갚기 위해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던 거다. 이게.. 더보기 물에 담근 각설탕 10년 묵은 짝사랑의 끝 내 마음에는 오래된 각설탕이 하나 있다. 몇 번씩이나 녹았다가 굳은 딱딱한 각설탕. 똑 떨어지기라도 했으면 버렸을 텐데, 마음 한구석에 끈적하게 눌어붙어 떨어지지도 않는다. 이건 내 ‘직업의 덩어리’다. 내가 사랑하고, 미워했고, 내동댕이쳐버리고 싶어 하다가도 차마 그럴 수 없었던 나의 일 그 자체. 갓 입사했을 무렵엔 포슬포슬해 보이는 표면이 빛에 따라 반짝반짝 빛나기도 했었는데… 가끔 달콤한 부스러기 같은 것도 떨어지고 그게 아주 기뻤었는데… 그랬던 것이 이제는 마치 지옥에서 올려보낸 용암 덩어리마냥 끈덕끈덕하고 누렇게 변했다. ‘속에 뭔가 꿈틀거리는 게 들어있는 건 아닐까’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비주얼로….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혹시 예정되어 있었던 걸까? 다들 이렇게.. 더보기 오래된 만두가게 나를 기다리는 나에게 시즌 1만으로도 너무나 완벽해 시즌 2부터는 볼 엄두도 나지 않았던 드라마 의 시즌 3는, 주인공 이브가 만두가게에서 만두를 빚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모든 걸 잃은 이브가 만두 가게에서 만두를 빚고 있다.’ 어떤 면으로 이브가 참, 한심한 생활을 이어 나가는 것 같은데 전 그렇게 보지 않았어요. 이브는 차분하고 익명성이 있는 곳으로 후퇴한 거죠. 이브가 컨트롤할 수 있는 삶으로요. 이브의 삶을 정의했던 외형적인 것들이 무너지고 사라졌죠. 그래서 이브는 어릴 때 먹고 자랐던 음식의 정수, 모국어의 정수로 돌아가요. 그 지점을 이야기에 녹여내고 싶었어요. (…) 이브가 말을 아끼고 평온한 모습을 보게 되죠. 홀에서 일하는 걸 거부하고 오히려 뒤쪽에서 익명성이 있는 곳에서 편안해..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