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다시 겨울 what the hell
인생을 열심히 가위질하고 풀질하여 꾸미던 어린 시절은 끝났다. 다부지게 신발 끈을 묶고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이야!"를 외치던 내 안의 캔디도 죽었다. 아, 말이 좀 심했나. 죽은 건 아닐까? 아직 내 안에 살아있을까? …아…아무튼… 여행을 인생의 큰 전환점으로 여기고 뭔가 큰 것을 얻거나 배우거나 해결되는 마법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제의 나는 없고 오늘부터 새로운 나!' 같은 마음을 먹는 것은 언젠가부터 하지 않게 되었다. 야속할 만큼 끊어지는 지점 없이 계속되는 게 인생이고, 이제 나에겐 생의 어느 부분도 부정하여 잘라내지 않고 그마저 다독여 걸어 나가는 게 숙제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건 가위질과 풀질보다 더 어려운 일인 게 틀림없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다가 가마니나 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다시 돌아온 겨울의 한복판은 춥지 않아 더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얼굴이 꽝꽝 얼도록 추워 주면 덜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돌아오니 괜히 몸이 아픈 것 같았고 일기장에 '시름시름. 내 몸이 여기 싫은가 봐'라고 적기도 했다. 그러던 내 앞에, 어느 날 봄이 앉아 이런 말을 했다.
"평생을 살아도 봄을 100번밖에 못 본다는 게 너무 아쉬워."
내 친구이자, 언니이자, 선배이자, 한때는 선생님이었던 그가 내 앞에서 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벌써 서른 번의 봄을 살았지만 앞으로 남은 봄을 세어 보며 아쉬워한 적은 없었다. 나는 봄이 온 듯 한 그의 얼굴과 목소리와 말에서 따뜻한 설렘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다음 계절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걸. 그저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있지…. 나는 살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나는 내 마음을 털어놓곤 울어버렸다. 그날은 왠지 그 마음이 좀 슬펐다. 춥지 않은 1월이었고, 아주 이상하게도 봄이 와버린건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겨울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뭔가가 용서되지 않아, 완전히 녹지도 못하고 얼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얼굴로 눈물을 흘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어찌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살고 싶지 않은 것과 죽고 싶은 것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내가 살고 싶지 않은 건 그저 이 세상의 흉악한 무언가를 더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만, 결국은 용서되지 않아서였다. 나는 이 세상을 용서할 수가 없다. 세상이 이렇게나 아름다우면서 이렇게나 불완전한 곳인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게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게 슬프다. 아, 그놈의 '왜'냐는 질문은 사실 내 인생에서 사라진 것도 아니었던 거다.
내 옆에 앉은 여름을 닮은 친구이자 후배가 질질 우는 내 부끄러움을 달래 주었다. 봄을 닮은 그는 다정한 "아이구…"를 내뱉으며 머릿속에서 천천히 고른 말들을 아주 천천히, 한 마디씩 테이블 위로 올렸다. 눈에서는 찔끔찔끔 눈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는데, 왠지 머쓱해진 입은 흐흐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입을 열어 "어떻게 해야 돼?"라고 물었다. 오레오 라떼를 마시던 나도, 홍차를 마시던 그도, 곡물라떼를 마시던 그 애도 흐흐 웃었다. 그러니까 그 테이블에 앉아있던 세 사람 모두 답을 알지 못했다. "나 자꾸 석양만 봐서 이렇게 됐나 봐!" 다음 여행은 지는 해가 아닌 뜨는 해가 보이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농담이 흘러나왔다. 나는 괜히 내 사랑하던 코타키나발루의 석양 탓을 해 보았다. 누군가는 내 질문에 대한 답을 꼭 알기를 바랐지만, 꼭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아무도 답을 하지 못해도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네 손에 열쇠가 있어. 그런데 그게 지금 네가 열려고 하는 문에 딱 맞지가 않아. 이렇게도 쑤시고 저렇게도 쑤셔봐도 열리지를 않아. 그래서 중간에 열쇠는 내팽개쳐놓고 다른 일을 해. 그러다 또 열쇠를 들고 쑤셔 봐. 안 열려. 그래서 또 잊어버린 채로 다른 걸 하면서 살아.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어 봐. 힘도 들이지 않고, 애쓰지도 않은 채로…. 그런데 그 열쇠가 그 문에 딱 맞아서, 문이 열려. 그럴 거야, 그런 걸 거야….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어."
봄과 여름을 등 뒤에 두고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좀 억울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참을 '왜'라는 질문을 놓고 마음이 찢어져라 답을 찾다가 더이상 왜냐고는 묻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도 아주 한참을 걸려 그렇게 된 것인데… 이제는 '어떻게'라는 질문까지 내려놓아야 한다는 게 좀 웃겼다. 왜냐고도, 어떻게 하느냐고도 묻지 말고… 그럼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나 이 시간을 지나칠 방법만 찾아 헤매기엔 인생이 아주 우스워지는 것이다, 저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는 그저 집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주절주절 결론도 없이 끄적였던 글을 매만지고, 칼 세이건이 썼다는 책에 코를 박았다가 코를 좀 훌쩍이기도 하고, 똥 싸 재낀 듯 엉망인 내 글을 보며 참담해 하다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버리는 걸 반복하며 지냈다. 사실 그 외에 딱히 다른 할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중간중간 내가 찍어온 석양 사진들을 들여다보기도 했는데, 돌아온 지 열흘 정도 지났을 때 벌써 사진에는 그리움이 묻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