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방역 전문가의 등장 Mr.Bah III
나뿐만이 아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바선생과 생명을 건(듯한 위기감이 드는) 대치를 벌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한 마리의 바선생이 밝은 아파트 복도에 서 있다가 불이 꺼진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고, 그 이후부터 현관과 가까운 쪽에는 24시간 불을 켜놓고 살고 있다. 방충망이 없는 말레이시아의 창문은 늘 닫아두는 것을 철칙으로 하면서도, 그래도 혹시 몰라 바 선생이 싫어한다는 레몬 껍질을 창문에 널어놓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인생에서 굳이 써보지 않아도 됐을 다양한 독성물질을 구비하고 실험하여 기록을 남긴 후 필요한 이들에게 정보를 남기고 있었다. 딱한 사연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화장실에서 바선생을 만난 뒤 머리가 떡질때까지 머리를 감지 못하고 울며 지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사실 바선생에게 투여할 독성물질을 연구한다는 사람이 소개한 '집안에 터뜨리는 폭탄'과 같은 물질은, 수많은 바선생들이 자진하여 걸어 나와 죽는다는 점에서 아주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만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말레이시아에 이민을 오고자 하는 이들의 최대 고민이 바로 바 선생이며(뇌피셜) 신기하게도 무언가를 무서워한다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간절하고 애절한 태도, 그러니까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겸손한 사람들같으니! 사람의 미덕을 고루 갖추었구나. 이들은 바선생과 대담하게 대면하지 못하는 자신을 조금은 자책하고 부끄러워하며 'ㅠㅠ'와 같은, 연약함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독자가 자신의 그러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 이 모든 정보는 코타키나발루에 발을 내딛는 내 두 번째 손님, 내 동생이 방역을 위해 바선생을 연구하던 중 내게 말해준 부분을 토대로 종합한 것이다. 동생은 해충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말레이시아에 와서는 말레이시아에 맞는 방역법을 익히기 위해 말레이시아 이민 온라인 카페를 드나들며 연구를 진행했다. 감히 그의 이름조차 검색창에 올리지 못하는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동생이 간간이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었다. ㅠㅠ.
이 집은 개미가 있기에 안전하다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경기도 오우-산. 현관문 밑, 화장실 창문, 아예 벽 전체가 열린 문인 세탁실을 둔 이 집에서 열린 문은 사랑 뿐일 거라 믿었던 내 안일함과 순진함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열린 문은 LOVE가 아니다. LOVE가 Open door일 뿐이다. 진작 눈치챘어야 했는데! 왜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집합과 명제>도 제대로 박히지 않은 것인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문은 바선생에게 보내는 초대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나는 내가 새로운 물건을 들이면 꼭 한 번씩 단체로 들러 검사하고 떠나는 개미들을 귀여워 하기까지 하며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 집에 온 지 2주 만에 그를 만나고야 만 것이다.
그를 만난 것은 12월 30일, 정확히 말하면 12월 31일의 아침이 밝아오기 전이었다. 새벽 세 시의 화장실 문 앞. 아무런 의심 없이 불도 켜지 않고 볼일을 보고 나오던 중, 그가 화장실 문 앞에서 머뭇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우리(!)는 정말 거짓말 한 톨 보태지 않고 15초 이상 멈춰있었다. 나도 그도, 누가 먼저 움직여야 할지 눈치를 보며 '나 여기 없어' 기술을 시전하고 있었다. 결국 더 이상의 긴장을 참지 못한 내가 먼저, 최대한 다리를 벌려 멀리 뛰었다. 나는 침대방 쪽으로 달려가며 '제발 이쪽으로 나가줘!'라는 마음으로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젖힘과 동시에 방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밤새도록 침대에서 벌떡벌떡 일어나 방문 쪽을 바라보며 새벽을 맞았다. 시발... 이 한 단어가 내 삶을 켜켜이 에워싸는 어두운 밤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갈지 말지를 한참 고민하다 발가락으로 걸어 나가 최대한 조용히 집안을 살폈다. 족히 터지고도 남을 정도로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서였다. '내가 열어놓은 문으로 나갔구나.' 나는 어리석게도 그 열어놓은 문을 통해 추가로 누군가 들어왔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 하고, 누군가 나갔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직 서울에 있던 동생은 "그렇게 큰 놈이 왔다면 그건 그 집에 산다기보다는 어디서 들어온 걸 거야. 작은 아이들이 나오면 꼼짝없이 서식하고 있다는 건데, 일단 큰 거면 나갔으면 되는 거니까 안심하렴."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 그냥 집 보러 온 걸 거야. 하지만... 여긴 개미가 있어 이 자식아! 개미가 있다고! 똑똑히 봤겠지? 개미는 너의 번식을 막는다구! 니들 여기오면 그냥 고자라고! 아니, 집을 보러 온 거면 부동산 업자라도 끼고 올 것이지 왜 밤에 몰래 와서 보고 난리야! ㅠㅠ
나는 그날 밤, 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생에게 호기롭게 메시지를 남겼다. "집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으니 걱정 말고 와." 아무도 없기는 개뿔. 무사히 도착해 코타키나발루에서 새해를 맞은 뒤 편안하게 침대에 누웠지만, 좀 더 도톰한 이불을 찾는 동생을 위해 방문을 열고 나가던 내가! 바로 그 문틈에 몸을 기대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만다. 앜. 내 민첩성은 놀랄 정도로 발달되어 있어, 나는 그를 발견한 동시에 침대 위에 있었다. 나는 정말로 동시에 두 군데에 있었다. 문 앞과 침대 위. 아, 생각해보니 새해 첫날부터. 2020.01.01. 되자마자 나타났네. 아오씨…. 놀라 숨도 못 쉬는 나와 달리, 우리 집 방역 전문가인 동생은 이곳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뿌리는 약 어딨어?" 그녀는 눈으로는 계속해서 바선생을 주시하면서, 날 위해 문까지 닫아주었다. 동생은 바선생의 모습을 자세히 보지 않기 위해 선글라스를 낀 뒤 약을 살포했다. 바선생은 큰 소란 없이 유명을 달리했다. 나는 이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침대에서 심호흡을 하며 궁금해했다. 도대체... 도대체 어디 숨어있었던 거야. 내가 아무도 없음을 분명히 확인하고...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이를 닦고 거울을 볼 동안... 어디에서 나를 보고 있었던건데!!!
"민첩하지가 않아. 한국의 바선생들과 좀 달라. 경각심이 없달까?" 동생은 '경각심'을 강조했다. 이것이 말레이시아 바선생들에 대한 동생의 날카로운 평가. 이 평가는 곧 객관성이 입증된다. 이 시간 이후로 틈만 나면 관심 있게 말레이시아 이민 온라인 카페에 들어가 바선생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던 동생은, 여러 사람이 자신과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된다. "모양도 좀 달라. 날지는 않으니 미국 스타일은 아닌 것 같고... 한국처럼 유광 검정이 아니라서 그냥 평범한 벌레 같은 느낌도 있어." 동생아, 제발 그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연구하지 말아줘.... 아니면 속으로만 말하든지.... 다음날, 방역전문가는 한국에서 가져온(!) 바선생 트랩을 곳곳에 설치하고, 열려있는 창문들을 단속하고, 현관문 틈에 테이프를 붙이고 미리 약을 뿌려두는 등 할 수 있는 한의 모든 조치를 취했다. 사랑해. 우리는 여전히 외출했다 집에 돌아올 때마다 "집에 아무도 없는 거 맞겠지?"라는 대화를 나누고는 있지만, 그 이후 이 집을 보러오는 간 큰 예비 세입자는 없다. 내가 분!명히 말했듯이! 여기는 이미 세 들어 살고 있는 사람이 둘이나 있고! 개미가 있다고! 개미가 있다고!! 개미는! 개미는!! 너희들을 실.질.적. 고자로 만든다고! 알고나 있으라고!!
나는 저 방역전문가가 좋고, 자랑스럽고, 나의 유난한 두려움이 그를 더 담대한 존재로 키운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과 뿌듯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방역전문가가 아침에 일어나 김치볶음밥을 해 먹고 조금 쉰 후에 다시 신라면을 끓여 먹고 오후 3시까지 잔다고 하여도 불만이 없다. 이곳에 온 뒤로 딱히 둘러본 곳 없이, 마치 서울시 동작구의 한 빌라에서처럼 생활한다고 하여도 원망 같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는 그의 사명을 다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그가 떠나고 엄마와 단둘이 있을 3일이 벌써 걱정이다. 엄마는 자꾸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못 잡고도 잡았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엄마와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바선생이 집을 드나든다면... 나는 뜬 눈으로 3일을 지내야 할 것이다.
아니, 근데 지금 바선생 에세이만 몇 편을 쓰고 있는 거야?